건축선과 대지 안의 공지, 설계할 때 제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이유.
설계를 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과 싸워야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보통 투명한 선과 면의 형태로 다른 이들의 눈엔 띄지 않고 설계자의 눈에만 보이는데요,
설명이 아닌 이름으로만 말씀드리자면 수평투영면적, 건축선, 인접대지경계선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애니메이션틱하네요.
오늘은 저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건축선과 대지 안의 공지 기준과의 결투에서 패배했던 이야기입니다.
1. 건축선과 대지 안의 공지란?
건축선이란 건축물을 건축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한 기준선을 말합니다.
건축물의 벽이나 기둥 등이 이 선을 넘어 도로 쪽으로 설치될 수 없도록 정해 놓은 가상의 선을 말하는데요,
많은 분들이 건축선을 대지경계선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지만 두 개념은 서로 다릅니다.
대지경계선 = 토지의 경계를 의미
건축선 = 건축물이 넘어갈 수 없는 법적 기준선
이렇듯 건축선은 건물을 설계하기 전에 대지에 어떻게 배치할지를 계획하는 단계에서 반드시 검토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대지 안의 공지란 건축물을 건축할 때 건축선과 인접대지경계선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띄워 확보하는 공간을 말합니다.
적용대상과 구체적인 이격거리는 건축법령과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건축조례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화재 발생 시 연소 확대 방지, 채광 및 일조 확보, 유지관리 공간 확보, 도시 미관 개선 등의 이유로 대지 안에 여유 공간을 두고 설계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2. 다른 지역의 조례를 놓쳐 건물을 줄였습니다.
입사 초반, 치명적인 실수가 있던 건입니다. 계획과 설계하던 모두가 이 부분을 놓쳤거든요.
우선 지금 와서 원인을 짐작해 보자면 제가 주로 설계하던 지역이 아닌 처음 해보는 경기도 지역임에도 "여기도 당연히 아니겠지" 하는 마음을 당연히 가지고 안일했던 것 같아요.
조그마한 땅에 1층짜리 근린생활시설 건물이었습니다.
면적과 규모, 건축주가 요구하는 모든 부분을 대지에 꽉 채워 도면과 서류를 작성해 허가 접수를 넣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허가 담당자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건물의 한 면 전체가 조례에서 정한 이격거리 기준을 지키지 못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지 안의 공지에 따른 이격거리 미준수 지적이었고, 건물 한쪽 면을 1m 이상 줄여야 했습니다.
건축조례에 따른 대지 안의 공지 이격거리를 지키지 못해 허가 접수를 한 마당에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건축주에게 설명해야 했고, 허가 취소가 아닌 보완 기간 동안 도면과 서류를 전부 수정해 다시 올리는 것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느낀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건축선, 너 정말 너무하다!
3. 사용승인 때 캐노피까지 문제가 됐습니다.
같은 건의 후속사건인데요, 설계 도면은 다 수정했으면서 지붕평면도에서 건축선을 반영하지 못한 사건이었습니다.
수정된 이격거리 기준을 지붕평면도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캐노피 일부가 기준선을 넘어가도록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처 반영하지 못한 저의 명백한 실수였습니다.
이게 사용승인 때 업무대행 건축사님께서 현장점검을 나갔을 때 지적을 받게 된 내용인데요, 현장에서는 도면대로 설치했다 하시고 캐노피의 아주 일부만 나갔을지언정 위반인 건 맞으니까. 지적을 받았으니 다시 시공해야 하는 것도 맞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송구한 마음을 다해 양해를 구하고 캐노피의 폭은 조절해 다시 설치한 경험이 있습니다.
4. 도로 두 개 와 접한 대지, 건폐율이 남아도 건물을 키울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은 건폐율은 남는데 더 크게 지어드리지 못해 안타까웠던 사건입니다.
단독주택을 짓고자 하는 건축주셨는데요, 본인 소유의 땅을 가지고 계셨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저희 사무실과 미팅을 진행하셨습니다.
하지만 하필 그 땅이 도로 2개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도로가 일반적으로 다 나있었으면 괜찮았겠지만 그게 아니라 도로 확폭을 필수로 해야 하는 좁은 도로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두 도로 모두 폭이 부족해 건축선 후퇴를 검토해야 했고, 그만큼 건물을 배치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었습니다.
건물은 당연히 기존 계획보다 좁게 지어질 수밖에 없었고, 보인 소유의 땅인데도 원하는 만큼 건물을 배치하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건축선이 단순히 도면 위의 선이 아니라 실제 건축 규모를 제한할 수 있는 선이라는 걸 이때 완벽히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5. 그래서 저는 설계할 때 이렇게 확인합니다.
우선 먼저 지자체 건축조례 대지 안의 공지 기준표를 확인합니다.
표를 따라 지금 건물의 용도엔 적용해야 하는지, 한다면 건축선은 얼마만큼 띄워야 하고 인접대지경계선도 얼마의 간격을 둬야 하는지 체크합니다.
그다음 캐드에서 배치도를 열어 대지경계선으로부터 인접대지경계선을 표시하고, 각각 적용되는 이격거리만큼 OFFSET 명령어로 가상의 기준선을 그립니다.
이렇게 건축 가능한 영역을 먼저 설정한 다음 그 안에서 건축물의 규모와 배치를 계획합니다.
다른 경우는 또 무엇이 있냐면 대지에 인접한 도로의 폭이 나오지 않아 대지 공제를 통해 도로를 확폭 하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도로 중심선에서 기준만큼의 거리를 이격해 설계 대지를 빼주는 형식입니다.
건축선, 인접대지경계선 이런 개념이 아직 명확하지 않을 때 한 실수가 원체 많다 보니 강박적으로 기준표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대지 안의 공지를 다 잘 지켰는데 배치도 상 표시해 달라는 보완도 받아본 적 있고요,
인접대지경계선에 너무 타이트하게 건물을 배치한 바람에 조금 더 여유를 두라는 보완도 받아봤습니다.
저에게 건축선은 도면에 보이지 않아도, 실수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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