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면서 만났던 조금 특별한 건축주와, 기억에 남아 있는 사례들에 대해서.
설계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을 쓰면서 용도만큼이나 또 특별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다양한 건축주와 특이한 의뢰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보통 건축주라고 하면 내 집을 짓는 개인이나 공장과 상가 등을 짓는 사업체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하지만 오래 일하다 보니 개인도, 일반적인 법인도 아닌 종중이 건축주였던 경우도 있고,
오래전에 지어진 우사를 적법화하기 위해 현장부터 다시 살펴야 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건물은 평소보다 장애인편의시설을 훨씬 세세하게 검토하며 설계해야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어제는 곤충사육사와 버섯재배사처럼 조금 특이한 "건축물의 용도"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오늘은 방향을 조금 바꿔보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만났던 조금 특별한 건축주와 기억에 남는 업무 세 가지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종중이 건축주였던 사례
해당 건은 용도가 특별했던 건축물은 아니었어요. 적당한 규모의 단층짜리 근린생활시설(소매점)이었습니다.
철골조에 단열패널로 외부마감을 했던, 오랜 기간 나대지였던 땅이라 토목 부분의 계획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대지 자체가 종중의 소유였고 이를 개발해 카페 사업을 하기 위해 저희가 건축설계를 맡게 된 건이었습니다.
계획을 진행할 때부터 허가접수 당시까지 건축주로 저희와 연락을 주고받은 분은 한 분이었어요. ○○씨 ○○파 종중의 대표자로서 말이죠.
큰 문제 없이 허가 과정을 진행하고 협의 부서에도 차례로 회신이 돌아오던 어느 날, 건축과 담당 주무관이 이런 보완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종중에 속한 사람 모두에게서 건축동의서를 받아오세요."
담당자에게 들은 설명으로는 종중 소유 토지인 만큼 이후 종중원 사이에서 동의 여부를 두고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희가 진행하던 건에서는 종중원들의 건축동의서를 추가로 제출해 달라는 보완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검토 후 허가가 나기 직전 내려진 보완이었기에 당황스러웠지만 미리미리 예방하는 차원에서 건축주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며칠에 걸쳐 수십 명이 되는 종중원들의 동의서 날인을 받아왔던 일이 기억나네요.
2. 우사 적법화
제가 경험했던 우사 적법화 업무는 기존 축사의 위반사항을 확인하고, 현행 기준에 맞도록 필요한 조치를 한 뒤 관련 행정절차를 진행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사 중에서도 지어진 지 오래된 옛 건물인 우사가 이런 부분이 많았지요.
당시 제가 참여했던 적법화 업무는 지자체에서 진행하던 사업의 일환이었습니다.
적법화가 필요한 우사를 먼저 조사하고 목록으로 정리해 지자체 건축협회를 통해 하나씩 차례로 업무를 배정하는 방식이었죠.
저희 사무실도 업무를 배정받아 현장조사에 나섰습니다.
지붕 마감재가 대지경계선을 넘어가 있던 경우, 건축물대장상의 도면과 실제 대지 내 건축물이 일치하지 않았던 경우 등이 있었죠.
그래서 대지경계선을 넘어간 지붕 마감재를 잘라내 대지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공사와 현장 치수를 재서 역으로 도면을 그리는 작업을 했었습니다.
3. 장애인단기거주시설
노유자시설의 사회복지시설이었던 이 건물은 온전히 사용자인 장애인에게 맞춰진 설계를 했어야 했습니다.
일반적인 설계와 달리 장애인편의시설 기준을 꼼꼼히 따져보았고 더 나아가 BF인증을 받기 위해 저희 상사께서 고생 많이 하셨죠.
BF(Barrier Free) 인증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 누구나 시설을 이용하고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계획되었는지를 평가하는 제도입니다.
해당 시설은 장애인편의시설 계획도면을 별도로 작성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저는 관련 법령과 기준이 정리된 책자를 옆에 두고 평면도와 배치도를 하나씩 맞춰가며 설계했습니다.
우선 부지 주출입구에서 건물 출입구까지 이어지는 20m가 넘는 동선에 점자블록을 계획했었습니다.
또 출입구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부분도바닥의 단차, 촉지도식 안내판의 설치 위치, 비상벨의 위치와 간격 등을 고려했고요.
욕실과 화장실 모두 장애인 편의시설인 손잡이와 논슬립 바닥재를 쓰는 등의 계획이었죠.
종중이 건축주였던 건물도, 오래된 우사를 적법화했던 일도, 일반 근생보다 훨씬 강한 장애인편의시설 기준을 하나씩 확인해가며 설계했던 건물도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업무였습니다.
설계사무소에서 오래 일했다고 해서 늘 익숙한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새로운 건축주를 만나기도 하고, 처음 접하는 기준을 공부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렵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일들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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